
유니클로 뒤의 거인, 패스트 리테일링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을까요?
패스트 리테일링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가진 브랜드는 모두가 알죠. 바로 유니클로랍니다. 자라 뒤에 인텍스가 있는 것처럼, 유니클로 뒤에는 패스트 리테일링이 있어요. 이 회사는 정말 대단한 글로벌 패션 기업이죠. 일본 여행에서 지유(GU)를 보셨을 거예요. 또 미국의 띠어리나 독일의 헬무트 랭도 이 회사의 소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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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아세요? 지난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매출만 약 32조 원을 달성했어요. 이 금액은 명품 그룹인 캐링의 매출을 가뿐히 넘어서는 규모예요. 유니클로와 굿제 옷값 비교를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렸다는 걸 알 수 있죠. 이 덕분에 패스트 리테일링은 일본 시가총액 7위를 차지했어요.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는 일본 부자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창업자는 정말 천재였을까요? 초창기 이미지가 바닥이었던 이유는 뭘까요?
유니클로의 창업자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에요. 하지만 패스트 리테일링의 진짜 시작은 그의 아버지인 야나이 히토시 회장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아버지는 이 회사를 꽤 잘나가는 중견 기업으로 키워냈죠. 그래서 아들인 다다시 회장은 말 그대로 금수저 생활을 했어요. 그는 대학 2학년 때 아버지에게 200만 엔을 받아 세계 일주를 하기도 했어요. 당시 일본 대졸 신입 월급이 3만 엔 수준이었으니 정말 엄청난 돈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다시 회장은 일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었어요. 첫 직장인 유통 회사에서 9개월 만에 퇴사했어요. 심지어 친구 집에 6개월이나 얹혀살기도 했죠. 그러다 할 일이 없으니 집에서 일하라는 말에 마지못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거예요. 1972년에 오고리 상사의 남성복 매장을 담당하게 되었답니다.
다다시 회장이 매장을 맡은 후 문제가 생겼어요. 그는 대형 유통사 경험이 있었기에 직원들에게 간섭을 심하게 했죠. 그런데 간섭받던 직원들은 아버지와 평생 일해 온 4촌 형들과 선배들이었어요. 그러니 분위기가 좋았을 리가 없겠죠. 결국 직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퇴사하는 사고가 터졌어요. 이 사건은 사실상 가정 폭발급이었죠.

이때 다다시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미친 듯이 경영 공부를 시작했어요. 마쓰시타 고노스케, 레이크로, 피터 드러커 같은 경영 대가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답니다. 그러던 중 세계 일주 때 봤던 옷가게들이 떠올랐어요. 당시 일본 옷가게는 손님이 들어오면 호객 행위를 하는 게 기본이었죠. 하지만 미국은 정반대였어요. 손님은 자유롭게 옷을 고르고 결제만 도와주는 방식이었답니다.
미국식 매장 모델의 발견, 유니클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는?
내성적인 다다시 회장은 미국식이 훨씬 좋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그런 매장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아버지가 운영하던 오고리 상사와는 별개로, 1984년 히로시마 뒷골목에 가게를 열었죠. 그 이름이 바로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였고, 이걸 줄여서 지금의 유니클로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스파 브랜드는 아니었어요.
모든 변화의 시작은 1986년 야나이 회장이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일어났어요. 그는 홍콩에서 지오다노 셔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그 셔츠는 고급은 아니었지만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했어요. 그 비결은 간단했어요. 공장과 직접 계약해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들였던 거죠. 지오다노는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디자인했어요. 공장에 OEM으로 생산을 요청하고 그걸 전량 매입하는 리스크를 감수했죠. 대신 경쟁사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았답니다.

소품종 대량 생산의 성공과 재고라는 큰 숙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야나이 회장은 홍콩에서 본 방법을 곧바로 일본에 적용했어요. 유니클로는 자라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죠. 자라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트렌드를 빠르게 쫓았다면, 유니클로는 주력 상품 중심의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승부를 봤답니다. 이 전략을 완벽하게 증명한 것이 1998년에 출시한 1,800원짜리 후리스 플리스 재킷이었어요.
당시 백화점 후리스 가격이 수천 엔에서 만 엔을 넘었는데, 유니클로는 이걸 반에 반값으로 내놓았죠. 덕분에 일본 전체가 후리스 열풍에 휩싸였어요. 손님과 매출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하지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재고였어요. 대량 생산과 매입을 하다 보니 유행이 끝나면 옷이 엄청나게 남았거든요. 실제로 2001년 후리스 열풍이 꺼지자 매출이 급락하기도 했었죠.

무작정 매장만 늘리던 시절, 해외 진출 실패의 진짜 원인은?
유니클로가 일본 전국에 엄청난 속도로 매장을 늘린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어요. 남은 재고를 새 매장으로 넘기면 조금이라도 팔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야나이 회장은 모든 전략의 목표를 매장 수를 늘리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2001년부터 시작된 영국, 중국, 미국의 초기 진출 실패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매장만 계속 늘리고 운영이나 현지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일본 내에서는 공장에서 싸게 찍은 옷들이 많아지면서 '유니빠레(유니클로에 빠졌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했었답니다.

결국 2002년, 야나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어요. 그리고 영국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습한 다마스카 겐이치를 CEO로 임명했죠. 덕분에 떨어진 매출은 반등했고, 유니클로는 진정한 변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다마스카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히트텍이었답니다. 그는 90년대부터 함께했던 소재 기업인 도레이와 손잡고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기능성 소재를 개발했어요.
히트텍은 2003년에 출시되었는데, 타이밍이 정말 안 좋았어요. 출시 직후 일본에서 2~3년 동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히트텍이 정말 안 팔렸거든요. 폭발적인 판매는 무려 2007년부터 시작되었죠. 다마스카가 매출을 회복시키고 영업 이익도 두 배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는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야나이 회장은 이 시기를 빌미로 다마스카를 CEO에서 강등시키고 본인이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답니다. 그는 다마스카에게 "회복세라고 방심해서 소비자 니즈 파악에 실패했다"는 각박한 평가까지 내렸어요. 당연히 다마스카는 이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죠. 사실 야나이 회장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다마스카가 일본 내 경영 안정에 집중하느라 해외 진출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하지만 다마스카 입장에서는 해외 사업 실패 뒷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니 내실을 다지는 게 맞았을 거예요.
잃어버린 30년,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유니클로의 통찰력이란?
이후 성과만 보면 야나이 회장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유니클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대적인 흐름이 있었거든요. 유니클로는 1984년에 태어났지만, 진짜 성장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때문이에요. 장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던 일본인들의 지갑이 닫혔죠. 그 틈을 1,800엔짜리 후리스 재킷이 파고들었던 거예요. 이때 유니클로 옷은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나쁘지 않아 일본인들에게 딱 맞는 브랜드가 된 거죠.

당시 글로벌 패션계는 패스트 패션의 전성기였어요. 자라는 트렌드를 번개처럼 반영했고, H&M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했죠. 미들급 브랜드의 포지션이 애매해지면서 소비자들은 패스트 패션으로 이동하고 있었어요. 야나이 회장은 이 흐름을 정확히 읽었답니다. 그래서 중국 시장에 재도전했고 동남아 시장으로도 빠르게 확장했죠. 실패 끝에 두 번째 도전은 완벽한 성공이었어요. 현재 해외 매출은 일본 매출을 넘어섰고, 중국이 핵심 시장이 되었답니다.

중국 의존도와 리더십 공백, 이 거대 기업의 미래는 불안한가요?
하지만 여기서 패스트 리테일링의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나요. 바로 중국 의존도죠. 최근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커지면서 패스트 리테일링은 정면으로 영향을 받고 있어요. 특히 중국 정부의 규제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패스트 리테일링은 강력한 직격탄을 맞게 될 거예요. 매출뿐 아니라 공급망 자체도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또 하나의 위험은 바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 그 자체예요. 야나이 회장은 이제 70대 중반을 훌쩍 넘겼죠! 그래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도 큰 관심사랍니다. 사실 이건 모든 창업주 회사들이 겪는 문제지만, 패스트 리테일링은 걱정이 더 커요. 왜냐하면 야나이 회장이 모든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마이크로 매니징 스타일이기 때문이죠.

야나이 회장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어요. 그는 유니클로가 지켜야 할 기업 가치를 17가지를 만들었어요. 컨설턴트가 핵심 네 개로 줄이자고 제안했는데, 오히려 그것을 23개로 더 늘려버렸다고 해요. 이 많은 조항들을 근거로 임원과 관리자들을 계속 평가하고 지적했죠. 이것이 그의 진짜 스타일을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지정학적 위기와 리더십 승계, 패스트 리테일링은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야나이 회장은 시대 변화에 맞춰 강력한 결단력으로 유니클로를 지금의 거대 기업으로 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중일 갈등, 공급망 리스크, 그리고 야나이 회장의 고령화 이 세 가지가 겹치고 있어요. 이 때문에 패스트 리테일링의 미래를 둘러싼 신중론이 커지고 있답니다.
야나이 회장의 카리스마가 빠지면 조직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는 거예요. 과연 패스트 리테일링은 이 지정학적 갈등 위기를 잘 버티고 새로운 리더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까요? 그 선착에 따라서 패스트 리테일링의 미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지도 몰라요. 우리 모두 이 거대 기업의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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